여행팀후기
여행은 좀 더 새로워진 나를 만나는 통로이다
작성자
김현숙
작성일
2017-10-08 10:51
조회
1076
델리에서 암리차르까지
우다이푸르에서 델리로 가는 기차,
열두시간 침대 기차에서 잤다.
에어컨 칸이어서 깨끗하고 편한기차ᆢ
델리 숙소에 일곱시사십분 도착했다
메인바자르 삐하르간즈부근ᆢ정말 복잡하고 시끄럽고ᆢ
샤워하고ᆢ잠을 청하고ᆢ 아홉시반에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오물렛과 토스트 식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조식을 먹고 영국이 조성했다는 코넛 플레이스로 릭샤를 타고 갔다
이곳은 수도답게 제법 깨끗하고 옷차림도 인도 복장이 아닌 캐주얼을 많이 입고 다녔다
맨발로 다닌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점심은 중국식 식당에 가서 여러가지를 시켜서 먹고ᆢ
실컷 배부르게 먹었다. 제법 고급식당인데도 일인당 250루피(5,000원 정도)
인도 물가가 저렴함을 실감한다ᆢ 근데 천루피면 우리 돈으로 만팔천원인데 ᆢ마치 십만원 같은 기분이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ᆢ휴식을 취한후 시내 상점을 돌아 다녔다
베네통에서 티셔츠한장, 리바이스에서 티셔츠 두장ᆢ 우리나라와 같은 메이커라도 색상이나 옷감이 많이 달랐다
공예품들이 맘에 들어 구입하고ᆢ숙소에 들어와 짐을 꾸려 본다
여러도시를 다니며 구입한 물건 정리가 힘들었다
인도 세밀화 그림이 짐꾸리가 힘들었다
힘들어도 집에 가지고 가면 쓸모가 많을것 들인데
여섯시반에 인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도 음식에 적응이 많이 되었다.
대장이 우리가 싫어하는 향은 빼고 주문을 해서 ᆢ맛있게 먹고 있다
저녁 마치고 대장이랑 셋이서 바에 가서
인도 맥주 네병 감자칩 안주에 먹고 팔백 칠십 루피 팁 오십루피 ᆢ그래도 이만원도 안된다 ᆢ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낼은 짐을 호텔한곳에 맡기고 간단한 짐만 가지고 암리차르로 간다
델리의 아침ᆢ
오물렛과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꾸뜹미나르로 향했다
꾸뜹미나르는 승전탑으로 (12세기에 힌두와 전쟁에서 이슬람 승전을 기리기위해 75미터로 세운탑)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수도의지하철, 깨끗했다 삼성 물산에서 건설한 것이란다
한거장타고 라지브촉에서 환승ᆢ꾸뜹미나르역에 가서 내렸다
거대한 붉은 탑이 눈에 들어왔다
오층 석탑으로 겉면에 조각이 현란하게 꼭대기까지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석탑
터키계 노예 출신왕조ᆢ원래 힌두사원이었는데 개조해서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이슬람 문양, 연꽃문양으로 조각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 진 탑ᆢ
경찰이 곳곳에 있다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사진을 몇컷 맡겼더니 팁달라고ᆢ 오십루피지불!
여덟시 기차가 연착되어 아홉시 이십분에 탑승ᆢ
전날 낮에 인도 남부에서(24시간전) 출발한 기차란다
델리 갈때와는 다른 등급의 기차 에어컨 없는 침대칸ᆢ
실내가 지저분 했던 곳
우리 대장ᆢ두팔 걷어 휴지로 주변을 쓸어내서 어느 정도 정돈을 하고서 의자에서 앉을 수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누울 수 있게 침대정리 ᆢ침낭 깔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워도 침낭속에 몸을 누이면 기분상 분리된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이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 침낭은 일등공신인셈이다.
호텔 이불에서도 침낭으로 해결ᆢ
펀잡주의 암리차르 가는길ᆢ험난 했다
역마다 연착, 결국 오전 열한시에야 기차에서 내릴수가 있었다
열네시간을 탄셈ᆢ
호텔에서 픽업을 나와서 호텔 도착ᆢ
호텔 골목에서 인도 전통결혼식 풍경을 만났다
요란하고 화려한 결혼식 광경에 피곤함도 잊고 흥겨운 악단 연주에 흥이 돋는다
신랑이 치장한 말위에 올라 앞에 꼬마남자 애를 앉히고 신부집으로 가는 풍경같았다
꽤 돈 많은 신랑인지 말위에서 돈을 뿌렸다
숙소에서 룸서비스로 토스트 4장, 오물렛으로 아침을 먹고 쉬었다
오후 두시반에 모이기로했다
암리차르는 쌀쌀하고 추웠다 인구가 백십만의도시
파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 시크교의 본산지ᆢ
오후엔 SUV 차량을 빌려 국경지대에서 매일 열리는 와가 국기하강식을 보러 갔다
사십오분 달려서 도착했다.ᆢ도착해 보안대 검색ᆢ세번을 보안대 통과해 입장ᆢ
많은 사람이 입장했다
국기하강식을 보니 인도인들의 모습은 마치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커다란 철문을 두고 양쪽 군인들이 퍼포먼스를 펼쳤다
파키스탄의 육중한 군인ᆢ검은 복장 ᆢ
채식주의의 왜소한 인도군인ᆢ양쪽 국민들의 함성ᆢ볼만 했다
다시 차에 올라 황금사원으로갔다 시내에위치해 있었다
시크교는16세기부터 18세기에발전한 인도에서 생성된 종교란다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들어갔다.
시크교는 힌두교의 카스트를 부정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란 사상에서
구루나낙이라는 스승으로부터 시작됐다
신도는 이천오백만정도ᆢ
사원내 곳곳에 구루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대화도 하고 싱담도 하는 듯하다
황금사원에 들어가기위해서 양말과 신발을 벗어 맡기고ᆢ
신발 번호표를 받고 물에 발을 씻고 들어갔다
황금사원에서는 일년내내 무료 식사와 무료 잠자리를 제공 한단다. 나눔의 의미 ᆢ
황금사원 지붕은 750kg의 금을 사용했단다 화려했다 아이러니하다!!
밖엔 거지들이 있는데 이렇게 화려해야만 하는지 ᆢ이렇게 오늘도 하루를 마친다
암리차르 둘째날
아침 11시까지 휴식을 취했다ᆢ
둘째날 간 곳은 잘리안왈라 공원,
1919년 영국령 인도ᆢ
영국은 인도인들에게 집회금지법을 일방적으로 발령ᆢ이에 인도인들의 항의가 시작 되고ᆢ
1919년 4월13일 공원에 모여 있는, 무장도 하지않는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ᆢ
약 2천명 정도 사살 되고 총을 피해, 120명이 뛰어 들어 죽은 커다란 우물ᆢ 아픈 과거의 공원ᆢ
인도 독립의 기반이된 사건이기도 한다
공원을 보고 저녁에 봤던 황금사원의 낮풍경을 보러 갔다
맥도날드에서 아점을 해결ᆢ여섯시 기차로 델리로 이동
열한시반에 델리역 도착ᆢ
이 기차에 탄 사람들은 올 때 탔던 기차의 인도인들과 수준이 많이 달랐다
빈부격차가 심함을 느낄수 있었다
기차에서 세차례의 먹거리를 제공ᆢ저녁인셈이다
낮에 먹은 행버거가 소화하는데 버거웠는지 하나도 먹질 못했다
다시델리로 왔다 짐을 두고 가선지 집에 온 기분이다.
열두시간 침대 기차에서 잤다.
에어컨 칸이어서 깨끗하고 편한기차ᆢ
델리 숙소에 일곱시사십분 도착했다
메인바자르 삐하르간즈부근ᆢ정말 복잡하고 시끄럽고ᆢ
샤워하고ᆢ잠을 청하고ᆢ 아홉시반에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오물렛과 토스트 식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조식을 먹고 영국이 조성했다는 코넛 플레이스로 릭샤를 타고 갔다
이곳은 수도답게 제법 깨끗하고 옷차림도 인도 복장이 아닌 캐주얼을 많이 입고 다녔다
맨발로 다닌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점심은 중국식 식당에 가서 여러가지를 시켜서 먹고ᆢ
실컷 배부르게 먹었다. 제법 고급식당인데도 일인당 250루피(5,000원 정도)
인도 물가가 저렴함을 실감한다ᆢ 근데 천루피면 우리 돈으로 만팔천원인데 ᆢ마치 십만원 같은 기분이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ᆢ휴식을 취한후 시내 상점을 돌아 다녔다
베네통에서 티셔츠한장, 리바이스에서 티셔츠 두장ᆢ 우리나라와 같은 메이커라도 색상이나 옷감이 많이 달랐다
공예품들이 맘에 들어 구입하고ᆢ숙소에 들어와 짐을 꾸려 본다
여러도시를 다니며 구입한 물건 정리가 힘들었다
인도 세밀화 그림이 짐꾸리가 힘들었다
힘들어도 집에 가지고 가면 쓸모가 많을것 들인데
여섯시반에 인도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도 음식에 적응이 많이 되었다.
대장이 우리가 싫어하는 향은 빼고 주문을 해서 ᆢ맛있게 먹고 있다
저녁 마치고 대장이랑 셋이서 바에 가서
인도 맥주 네병 감자칩 안주에 먹고 팔백 칠십 루피 팁 오십루피 ᆢ그래도 이만원도 안된다 ᆢ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낼은 짐을 호텔한곳에 맡기고 간단한 짐만 가지고 암리차르로 간다
델리의 아침ᆢ
오물렛과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꾸뜹미나르로 향했다
꾸뜹미나르는 승전탑으로 (12세기에 힌두와 전쟁에서 이슬람 승전을 기리기위해 75미터로 세운탑)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수도의지하철, 깨끗했다 삼성 물산에서 건설한 것이란다
한거장타고 라지브촉에서 환승ᆢ꾸뜹미나르역에 가서 내렸다
거대한 붉은 탑이 눈에 들어왔다
오층 석탑으로 겉면에 조각이 현란하게 꼭대기까지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석탑
터키계 노예 출신왕조ᆢ원래 힌두사원이었는데 개조해서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이슬람 문양, 연꽃문양으로 조각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 진 탑ᆢ
경찰이 곳곳에 있다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사진을 몇컷 맡겼더니 팁달라고ᆢ 오십루피지불!
여덟시 기차가 연착되어 아홉시 이십분에 탑승ᆢ
전날 낮에 인도 남부에서(24시간전) 출발한 기차란다
델리 갈때와는 다른 등급의 기차 에어컨 없는 침대칸ᆢ
실내가 지저분 했던 곳
우리 대장ᆢ두팔 걷어 휴지로 주변을 쓸어내서 어느 정도 정돈을 하고서 의자에서 앉을 수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누울 수 있게 침대정리 ᆢ침낭 깔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워도 침낭속에 몸을 누이면 기분상 분리된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이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 침낭은 일등공신인셈이다.
호텔 이불에서도 침낭으로 해결ᆢ
펀잡주의 암리차르 가는길ᆢ험난 했다
역마다 연착, 결국 오전 열한시에야 기차에서 내릴수가 있었다
열네시간을 탄셈ᆢ
호텔에서 픽업을 나와서 호텔 도착ᆢ
호텔 골목에서 인도 전통결혼식 풍경을 만났다
요란하고 화려한 결혼식 광경에 피곤함도 잊고 흥겨운 악단 연주에 흥이 돋는다
신랑이 치장한 말위에 올라 앞에 꼬마남자 애를 앉히고 신부집으로 가는 풍경같았다
꽤 돈 많은 신랑인지 말위에서 돈을 뿌렸다
숙소에서 룸서비스로 토스트 4장, 오물렛으로 아침을 먹고 쉬었다
오후 두시반에 모이기로했다
암리차르는 쌀쌀하고 추웠다 인구가 백십만의도시
파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 시크교의 본산지ᆢ
오후엔 SUV 차량을 빌려 국경지대에서 매일 열리는 와가 국기하강식을 보러 갔다
사십오분 달려서 도착했다.ᆢ도착해 보안대 검색ᆢ세번을 보안대 통과해 입장ᆢ
많은 사람이 입장했다
국기하강식을 보니 인도인들의 모습은 마치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커다란 철문을 두고 양쪽 군인들이 퍼포먼스를 펼쳤다
파키스탄의 육중한 군인ᆢ검은 복장 ᆢ
채식주의의 왜소한 인도군인ᆢ양쪽 국민들의 함성ᆢ볼만 했다
다시 차에 올라 황금사원으로갔다 시내에위치해 있었다
시크교는16세기부터 18세기에발전한 인도에서 생성된 종교란다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들어갔다.
시크교는 힌두교의 카스트를 부정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란 사상에서
구루나낙이라는 스승으로부터 시작됐다
신도는 이천오백만정도ᆢ
사원내 곳곳에 구루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대화도 하고 싱담도 하는 듯하다
황금사원에 들어가기위해서 양말과 신발을 벗어 맡기고ᆢ
신발 번호표를 받고 물에 발을 씻고 들어갔다
황금사원에서는 일년내내 무료 식사와 무료 잠자리를 제공 한단다. 나눔의 의미 ᆢ
황금사원 지붕은 750kg의 금을 사용했단다 화려했다 아이러니하다!!
밖엔 거지들이 있는데 이렇게 화려해야만 하는지 ᆢ이렇게 오늘도 하루를 마친다
암리차르 둘째날
아침 11시까지 휴식을 취했다ᆢ
둘째날 간 곳은 잘리안왈라 공원,
1919년 영국령 인도ᆢ
영국은 인도인들에게 집회금지법을 일방적으로 발령ᆢ이에 인도인들의 항의가 시작 되고ᆢ
1919년 4월13일 공원에 모여 있는, 무장도 하지않는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ᆢ
약 2천명 정도 사살 되고 총을 피해, 120명이 뛰어 들어 죽은 커다란 우물ᆢ 아픈 과거의 공원ᆢ
인도 독립의 기반이된 사건이기도 한다
공원을 보고 저녁에 봤던 황금사원의 낮풍경을 보러 갔다
맥도날드에서 아점을 해결ᆢ여섯시 기차로 델리로 이동
열한시반에 델리역 도착ᆢ
이 기차에 탄 사람들은 올 때 탔던 기차의 인도인들과 수준이 많이 달랐다
빈부격차가 심함을 느낄수 있었다
기차에서 세차례의 먹거리를 제공ᆢ저녁인셈이다
낮에 먹은 행버거가 소화하는데 버거웠는지 하나도 먹질 못했다
다시델리로 왔다 짐을 두고 가선지 집에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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