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팀후기
여행은 좀 더 새로워진 나를 만나는 통로이다
인도배낭여행떠나보기 인도, 잊을 수 없는 여행!
NO. 01
Incredible India...
In the world와, 여행을 시작하다.
인도여행을 텍스트라는 매체로 표현하기엔 참 어려움이 많다.
시작과 끝이, 시간의 흐름이 의미없는 곳에서의 생활은
도무지 딱딱한 이 글솜씨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곳은 ‘인크레더블 인디아’라는 별명을 지닌 만큼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인도를 이제야 좀 잘 알것같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전혀다른 면모를 보여주며 내 허를 찌른다.
항상 넋 놓고 당하는 수 밖에 없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시간의 흐름이 정확한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나,
그래서 우리는 그곳 사람들의 삶이 불편했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처음에는 불확실한 것에 목숨을 걸고 현실적이지 못한 그들이 한심하게 느껴질때가 많았다.
그러나 차츰 나는 그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사는 법을 보게 되었고 그속에서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바라나시에서 보았던 한 아이의 삶속에 3000년의 갠지스강이 담겨있다.
타들어 갈듯한 뜨거운 뙤약볕 아래 시끄러운 경적소리, 신호도 없고 차선도 무의미한.
토릭샤와 싸이클릭샤, 오토바이, 자동차, 자전거, 낙타와 말과 소, 사람이 함께
이상한 질서로 흐르고 있는 미치도록 이상한.
그곳에서의 짧고도 긴 한달의 여정을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해서 끝맺음 하기가 어려워
기억에 남는 장면들과 그에 대한 단상으로 정리해 볼까 한다
Hello, Delhi?
What? Really? Live Here?
인더월드에 배낭여행을 신청한 것은 어쩌면 운명적일지 모른다.
충동적으로 신청한 인더월드 여행팀에 가장 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해본적은 있지만 배낭여행을, 그것도 혼자 가본적은 없다.
두렵기도 했지만 기분좋은 떨림을 안고 배낭을 맸다. 방콕 공항에 기다리며
만났던 인도인 아주머니는 일본말을 꾀 잘하셨는데 일본말을 못하는 나에게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싶었는지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나도 어떻게서든 대화에 응답하고자
고등학교때 배운 짧은 일어를 짜내어 바디랭귀지를 총동원 열심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참 대화중에 어디서든 잘자는 타고난 복을 지니고 태어난 나는 홀연 뚝떨어진 방콕공항에서
곤히 잠이 들어버렸는데 비행기시간에 맞추어 아주머니가 미리 깨워주셔서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디아, 델리...
난생 처음 혼자 비행기를 타보는 25살짜리 한국 여자애가 델리 국제 공항에 혼자 서있는 기분을.
상상이 가는가? 내리는 순간 전해지는 덥고 습한 공기가 이곳이 인도임을 말해주며 내 머릿속에는
왠지 시바신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하고 올라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너 왔냐?' '헐'
그게 내 인도인에 대한 기억에 첫 페이지다.
델리공항에서 빠하르 간지로 가는 택시안에서의 창밖의 모든 장면들도 하나도 빠짐 없이 선명하다.
그것은 어떤 카메라 같은것으로는 기록할 수가 없는 말그대로 '체험'이다.
내 뇌리에 처음 박혔던 인도라는 곳. 시끄럽고 덥고 습한 곳. 수시로 길거리의 거지가
뿌리치기 힘든 눈빛으로 구걸을 하는 곳. 그것이 내가 느낀 인도의 '처.음.'이다.
NO. 03
Varanasi
3000년이 흐르는 강가...
겐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3천년 전 부터 있었던 도시라니. 그 세월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흘렀던 시간만큼 그곳은 인도스러움이 무엇인지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꼬불꼬불 미로같은 이곳은 사람 두명이 지나가기도 힘든 쫍아터진 골목에 소도 지나가고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며 오토바이도, 개도 사람도 지나다닌다.
사실 바라나시에서의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물갈이 증세가 나타나며 몸도 많이 안좋았고 모든 것들이 내가 살던 한국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질서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도로와 미치도록 뜨거운 날씨까지.
짐을 싸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이몸은 신성한 겐지스강의 뿌자의식을 진행할때도 배 한켠에서
팀원 한명의 부채질까지 받으며 곤히 잠이 들었다는 말씀.
그러니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려 겐지스강에 간다면 나처럼 크게 실망할 수도 있음이다.
그러나 이 모든것들이 다녀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참으로 다른 면을 기억 하게 한다. 여행이란 그 당시의 현상이나 느낌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다녀와서의 곱씹음을 통해 느껴야 하는 것인가.
NO. 04
Mcleod Ganj
그리고 티베트의 눈물, 다람살라
요즘들어 '역사의식'에 대한 인식이 나에게 큰 관심거리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해도 나는
이민을 생각 했을 정도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들이 힘들게 번돈으로 낸 세금을
4대강에 쏟아붓는 우리나라,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도 알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두려워 하는 이 나라가...그냥 떠나고 싶었다.
속이 터지고 차라리 보느니 외면하고 싶었다.
열심히 살아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형편의 서민들과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놓지않으려,
더많이 가지려 하는 윗분들의 위선과 이기심. 학연지연을 통해 맺어진 인맥이 개인의 능력보다
중요한 나라. 그들에게 턱없이 비싼 등록금 내고 가르침을 받는 교육까지...
그러나 티베트 망명정부가 자리잡은 '다람살라'에서
나는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 몸에 전율을 느꼇다.
이 곳의 티베트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야 하는 일이 있을때 써야할 여권이 없다고 한다.
다만 임시 여권 같은 종이쪼가리 정도를 가지고 다른 나라사람들보다 훨씬 어렵게 입출국 심사를
거치고 까다로운 절차끝에야만 외국을 오갈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여권 앞장에는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갖고있는 이 사람이 댁의 나라에 오갈때 어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한다.'는 성격의 글이 써있다. 이전에도 무심코 잘 읽어보지도 않았던 그 페이지가 그날.
나에게 왜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역사의식을 갖고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말해주었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 만으로도 큰 축복이고 나도, 내 후세들도 계속해서 이런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살면서 내 이기와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살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세상에 나와 뜻깊은 일을 하고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느낀 것이다.